몇일 전 필자의 서울사무실에서 전화가 왔다. 형사법정에서 증인 신청이 있으니 베트남에 살고 있는 증인들에게 연락을 취해 참석하게 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사건은 베트남에서 발생한 일이지만, 피해자가 한국 검찰에 고소하여 결국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이다. 가해자는 ‘베트남에서 벌어진 일인데 설마 한국에서 처벌이 되겠나’ 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베트남에 살면서 취약점 중 하나가 민사 또는 형사 피해의 경우 어떻게 구제받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특히, 베트남 공안 또는 법원은 외국인들끼리 발생된 사안은 취급하지 않으려 한다. 한국 경찰 또는 검찰도 해외에서 발생한 문제에 신속히 대응하고 영향을 미치는 데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다. 이러한 점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러한 법의 사각지대를 악용하는 경우들도 있다.
과연 베트남은 법의 사각지대인가? 결코 그렇치 않음을 알 수 있다. 법의 사각지대라는 인식을 버리고 준법정신에 입각한 생활이 되도록 구조적 노력을 하는 것도 아주 중요한 요소다.
민사 거래의 경우 어떤 계약관계를 형성해 놓는 게 좋은지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베트남 법원을 통해 소송에서 이겼다 하더라도, 만약 상대방의 재산이 베트남에는 전혀 없고 한국에만 있다면 이 승소 판결문을 갖고 한국에서 강제집행 할 수는 없다. 비용과 시간을 들여 어렵게 취득한 승소 판결문은 그야말로 종이쪽지에 불과하다. 반대의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베트남과의 거래 관계에서 한국 법원을 통해 승소 판결문을 받아 놓았는데, 상대방의 재산이 베트남에만 있다면 이곳에서 강제집행을 진행할 수 없다. 아직까지 한국과 베트남은 상대방 국가의 법원에서 판결한 판결문에 대해 강제집행을 인정해 주겠다고 하는 양국 간 협약이 체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상대방 국가의 판결문을 인정하고 강제집행에 협력해 주겠다는 양국 간 협약이 있는 경우에만 상대방 국가의 판결문이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상사중재를 활용할 수 있다. 상사중재는 법원의 판결과 달리 1심으로 종결하여 신속하게 진행된다는 점, 전문성을 갖고 있는 상사심사원이 참여한다는 장점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상사중재결정문이 다른 나라에서도 강제집행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같은 실행을 위해 1958년 뉴욕협약으로 국제상사중재에 대한 기본 틀을 마련하였고, 이 협약의 회원국으로 참여하게 되면 회원국 내에서는 상호 간 강제집행을 인정해 주도록 규정해 놓고 있다. 한국이나 베트남은 이 협약에 모두 가입되어 있기 때문에 한국상사중재원을 통해 판결 받은 결정문을 갖고 베트남에 와서 베트남 법원을 거쳐 강제집행을 실행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필자는 한국상사중재원 결정문을 베트남에서 강제집행해 본 경험이 있다.
반대로 베트남국제상사중재원의 결정문은 한국에서도 강제집행이 가능하다. 이러한 이유로 베트남 정부는 국제 경쟁입찰로 계약자를 선정하는 경우 법적 분쟁은 법원이 아닌 상사중제원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도록 강제규정 해 놓았다. 실제로 고속도로 공사에서 국제 경쟁입찰로 시공사를 선정하였는데, 이 때 계약서에 법적 분쟁의 경우 베트남국제상사중재원을 통하여 해결하도록 규정되어 있었고, 한국의 시공사가 법정관리 절차에 들어갔을 때 베트남 정부는 채권자로 서울중앙지법법원에 신청한 경우도 있다.
단, 상사중재원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계약서에 미리 법적 분쟁은 상사중재원을 통해서 해결한다고 규정해 놓아야 한다. 물론 사건이 발생한 후 문서에 의한 합의로 상사중재원을 찾을 수도 있지만, 주로 사태가 발생하고 나면 서로 간 분쟁이 격화되어 이러한 문서 합의는 쉽지 않다.
해외 비즈니스에서 흔히들 현지화를 많이 강조한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또 하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국제화 표준이다. 한국 영토를 벗어나는 즉시 국제 기준은 아주 중요한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상사중재원을 이용하는 것도 법적 분쟁 해결에 있어서는 국제화 표준이라 말할 수 있다.
형사문제도 인터폴이라는 국제형사 공조가 있다. 물론 일반적으로 중범죄의 경우 적용되지만, 일반적인 형사 사건의 경우에도 한국과 베트남 간 공조체제가 구축되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과거 론스타를 통해 다른 나라에서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하려면 철저한 법률 준수에 있음을 경험했다. 베트남도 마찬가지다. 이중 잣대를 갖고 있어서는 안 된다. 한국에 와서 영업하는 외국기업들은 한국법규를 잘 지키길 희망하면서 정작 우리가 베트남에 와서 업무하면서는 이를 가볍게 여긴다면 되겠는가?
이러한 경솔한 처사가 결국 우리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까지 통계적으로 해외 비즈니스에서 가장 큰 리스크는 법률 위반 리스크임이 들어났다. 해외투자에서 세무관리가 안된 경우, 환율 리스크 등 다양한 위험들이 있겠지만 법률 준수에 실패한 경우엔 단 한 번에 회사가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베트남은 법의 사각지대가 아니라 오히려 더욱 철저한 법률 준수가 요구되고 있다. 한국법규, 베트남 법규, 거기에 국제기준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철저한 준법정신은 우리 스스로를 보호해 주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다. 반대로 이에 실패한 기업이나 개인은 가장 쉽게 무너지는 원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