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말, 한국은 한여름이 시작된다. 무더위와 함께 태풍이라는 자연적 공포도 함께 몰려오는 계절이다. 베트남도 간간히 태풍 피해로 고통당하는 모습들이 보도된다.
베트남에서 태풍이 지나는 지역은 중북부 지방이기에 호치민 지역을 비롯한 남부지방은 태풍이 없는 무풍지대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요즘은 심심찮게 태풍의 영향이라고 하며 강한 비바람이 지나곤 한다. 이럴 때마다 여지없이 큰 나무들이 쓰러져 있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다.
몇 년 전 필자의 사무실 건물 앞에 서 있던 두 그루 나무 중에 하나가 쓰러져 하마터면 큰 피해가 있을 뻔한 적이 있었다. 나무통 둘레가 꽤 큰 오래된 나무였는데 아침에 출근해 보니 어이없이도 길가에 쓰러져 있었다. 길가로 쓰러졌으니 망정이지 사무실 건물로 쓰러졌으면 유리창이며 건물 파손이 크게 있을 뻔했다. 그때 놀란 것은 나무뿌리가 너무나도 짧았고, 잔뿌리조차 별로 없는 단초론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로도 조금 매서운 바람이 불 때 나무가 쓰러져 있는 모습을 몇 번 더 보았지만, 한결같이 나무뿌리가 너무도 부실하였다. 토양이 좋고, 자연재해가 없기 때문에 나무들이 굳이 힘들여서 땅 깊숙이까지 뻗으려 하지 않는 탓일까?
한국에 있을 때는 등산을 좋아했다. 도봉산 같이 바위산을 오르다보면 바위틈새를 파고들어 뿌리를 내리고 서있는 소나무들을 볼 때가 있었다. 뿌리가 반쯤은 바위틈에 들어가 있고, 반쯤은 바위 밖으로 나와 훤히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 뿌리는 아주 길게 늘어져 있고 바위틈을 파고 들어가다 보니 심지어 바위가 갈라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흙 한줌 없는 척박한 바위 위에서 생명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강한 소나무의 모습이었다.
‘천강의 나라’라고 표현된 베트남, 정말 강줄기들이 실핏줄처럼 대지를 휘감고 있고, 땅들은 기름진 천혜의 나라. 이런 좋은 환경 탓일까? 나무들은 뿌리가 깊지 못하고 강한 비바람이 불 것 같으면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다. 오히려 척박하기 이를 데 없는 바위산에 서 있는 소나무는 생명력이 강하고 어떤 비바람에도 오래 견딘다.
베트남에 첫 발을 내디뎠을 때만해도 자연환경처럼 경제도 블루오션으로 기대했다. 급속히 성장하고 확장시킬 수 있는 경제 블루오션 지대. 하지만, 지난 10년이란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은 것은 ‘무엇을 발전시키기에 너무나 더디고 쉽지 않은 정말 척박한 경제지대’라는 사실이다.
최근 월드컵이 끝나면서 축구 강국들의 등락에 대한 원인 분석과 함께 각 개인 선수들에 대한 평가까지 월드컵 후기가 이어지고 있다. 그중 한국은 국가적으로는 16강에 실패하면서 침체 분위기이지만, 그래도 손흥민 선수 개인적으로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듯하다. 며칠 전 손흥민 선수가 18세 때 독일 분데스리거에 처음 입문했을 때의 유튜브를 보며 새삼스럽게 손흥민 선수의 성공 비결을 알게 되었다.
특히, 손흥민 선수의 아버지 말은 참으로 공감되는 바가 있었다. 손흥민 선수 아버지인 선응정씨도 축구선수였었다. 그렇지만, 그는 자평하기를 자신이 축구를 하면서 축구선수가 축구공을 잘 다룰 수 없다는 점에 너무 화가 났었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의 아들에게는 축구를 입문시키면서 5~6년을 축구장에서 경기는 한 번도 시키지 않으면서 좁은 공간에서 계속 축구공을 다루는 연습만 시켰다고 한다. 보통 일반적인 경우 6개월 정도면 이를 마치고 그 다음부터는 필드에 나가 실전 경기로 연습하지만, 손흥민 선수는 볼키핑만 지루하게 몇 년 동안 계속해야 했다. 그러면서 손웅정씨가 하는 말이 대나무는 지상으로 올라오기 전 5년 동안 계속 뿌리 내리는 일만 한다고 하더라. 그렇지만 이 일이 완성되고 나면 지상으로 하루에 70cm씩 자라도 결코 바람에 쓰러지지 않는 견고성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베트남에서의 성공비결 바이블은 없다. 다만, 각자가 도전하고 실험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각자 답을 얻어가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공통분모가 있다면 ‘참고 인내해야 한다’는 점이다. 너무 쉽게 생각하거나 너무 안일해서는 화가 클 뿐이다. 대나무처럼 밑으로 뿌리내리는 일에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할지 모른다.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애쓰는 소나무처럼 끈임 없이 두드리고 무식하게 견디라고 요구받고 있는지 모른다.
어쩌면 이방인에게 이 같은 요구는 당연한 현상일지도 모른다. 물설고 낯설은 타지에 적응해야 하는데 말이다. 이러한 통과의례를 통해 우리는 베트남에 철저히 적응하고 순응하는 한 그루의 베트남 나무가 되어가는 것이라 생각해 본다. 그리고 그 인고의 과정을 거친 강한 나무는 어느덧 튼실한 과실을 맺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베트남의 달콤한 열대과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