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지인이 카톡으로 초한지 드라마를 보내준 것을 받아 보았다. 80부로 나뉘어 있는 긴 드라마였다. 과거에 초한지를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도 있고 하여 한편씩 보기로 했다. 요즘 퇴근하면 이를 보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상황이다.
초등학교 때 필자의 부친께서 “삼국지를 세번 읽은 사람과는 말도 하지 말라는 격언이 있으니 이 책을 꼭 읽어 보라”며 삼국지를 건네주신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말도 너무 어렵고 역사 지식이 없었던 탓에 읽다 포기하고 읽다 포기하고를 몇번 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초한지는 성년이 되어서 읽어서 그런지 아주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다. 특히, 초나라 항우와 한나라 유방의 인물 대비 이야기이다보니 삼국지보다는 스토리가 복잡하지 않아 이해가 쉬웠다.
초한지 드라마를 보며 예전에 초한지를 읽으며 들었던 의문이 또 다시 살아났다. 명문가에서 태어나고, 천하에 필적할 사람이 없는 장사로서 나름 학문까지 겸비한 항우가 집안도 내세울 것 없고 거의 시정잡배와 같은 청년기를 보낸 유방을 왜 이기자 못했을까 ?
드라마로 보니 책보다는 더 디테일한 인물 묘사가 있어 배경 상황을 더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념에 치우진 항우보단 하루 하루 살아남기에 급급했던 유방의 생존 에너지가 휠씬 강했기 때문은 아닌가 라고……. 그 한 단면을 한신의 등용에서 찾을 수 있다. 급격하게 유방 쪽의 전술전략이 출중해지는 요인으로 자타는 한신의 등용을 꼽는다. 원래 한신은 항우 밑에 있던 말단 부하였다. 항우는 한신을 중용해 보라는 참모들의 추천을 몇 번 받지만 그때마다 거절한다. 그 이유로 대장부가 비굴하게 살아남기 위해 다른 사람의 바짓가랑이 밑을 기어갔다는 점을 지적한다. 하지만, 유방은 한신의 과거 그런 행동을 전혀 개의치 않는다. 단, 한신이 진짜 가치가 있는지 한번 기회를 주면 되는거지 라고 가볍게 여기고 만다. 만약 한신이 항우의 중요 참모가 되었다면 전세가 바뀌었을 것이라고 단언하는 사람이 많다. 그만큼 한 사람의 중용이 두 사람의 권력 다툼에서 절대적 영향을 주었다.
항우는 출발부터 초나라 재건이 대의명분이었다. 무엇을 먹고 어떻게 사느냐는 중요치 않았다. 진나라에 잃어버린 초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대업 달성에 모든 초점을 맞추었다. 하지만, 유방은 나라 건설같은 것은 꿈꾸지 않았다. 진나라가 징집한 부역을 거절하고 죄인의 몸으로 도망자 신세가 된 유방은 단지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쳤다. 살아남는 것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었다. 격식과 명분에 맞는지 따질 겨를도 없었다. 한신을 받아들인 것도 이런 배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사실, 항우에게는 유방을 없앨 수 있는 결정적 기회가 몇번 있었지만, 이 때마다 항우는 기사도 정신을 발휘하여 유방을 놓아준다. 그러나 유방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때로 한국 기업이나 단체의 베트남 진출 이유를 설명하는자리에서 양국간 교류 촉진, 상생 발전, 베트남 기업 또는 사회의 후견적 지원 등 멋진 용어들을 들을 때가 많다. 필자도 그런 멋진 말을 하면서 신문 운영의 취지를 설명해 왔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훗날 한국인의 베트남 진출 역사를 기술한다면 누구의 관점에서 평가하겠는가? 결국 살아남은 승자의 관점에서 기술할 것이다. 초한지가 출중한 대의명분을 내걸었던 항우의 입장이 아니라 시정잡배처럼 살아왔지만 결국 승자가 된 유방의 입장에서 기술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생존을 위해 물불을 안가리는 모습 또한 볼썽사납겠지만, 그러나 동물이든 식물이든 생존하여 대를 이어야만 그 종의 가치가 생기는 것이다. 한국인의 진정한 가치가 베트남에서 구현되려면 진출기업, 진출 개인들의 생존에 무게감을 둘 필요가 있다. 이 생존은 단지 돈을 벌고 사업을 번창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철저히 베트남화 되고, 베트남 사회 일원으로 우뚝 서는 것까지 포함되어 있는 말이다. 이렇게 하여야 유대인이나 화교들처럼 대를 이어가며 타국에서 생존자가 될 수 있다.
이 점에서 우리는 동남아지역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는 화교들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동남아지역에서 화교 상권이 활발한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답은 간단하다. 이들이 진출하는 곳마다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이와 비교하여 우리는 한국기업, 한국인들의 중국 진출을 평가해 볼 필요가 있다. 많은 기대를 갖고 기업들, 개인들이 중국에 대거 이동했지만, 십수년이 지난 지금 그곳을 등지고 철수하고 있다.
이에 따라 베트남이 두번째 대단위 이주 국가가 되었다. 하지만 베트남에서조차 수십년 후에 한국기업, 한국인들이 생존에 실패하여 더 버티지 못하고 떠나버린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가 후세에게까지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이제는 베트남 시장이 답이다. 그리고 베트남 시장 이해를 위해서는 밑바닥까지 더 내려갈 필요가 있다. 베트남 사람들과 한 몸이 되기 위한 철저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렇게 피부로 느끼고 체험하면서 우리의 터전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조금 우월하다고 허세를 떨 여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