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치민시 7군 푸미흥에서 자그마한 식당을 운영하던 교민 A씨는 불과 3년 만에 쫓겨나듯 식당을 접어야 했다. 월 2000USD가 조금 넘는 임대료를 내고 있었다. 그런데 재계약이 다가오자 건물주가 월 임대료를 갑자기 두 배 이상 올려버렸기 때문이다. 첫 계약 당시만 해도 건물주는 ‘임대료를 올리지 않을 테니 여기서 10년 이상 편하게 장사하라’며 A씨를 안심시켰다. 개점 3년차에 접어들면서 손님이 늘어 인테리어도 새로 하는 등 의욕을 보였던 A씨는 갑작스러운 임대료 인상으로 도저히 수지를 맞출 수 없다고 판단, 결국 이 곳을 떠나야 했다.
최근 한인 밀집지역인 푸미흥에서 A씨의 경우처럼 비상식적인 임대료 인상으로 신음하는 소상공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A씨처럼 재계약을 하면서 100% 인상을 요구하는 건물주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심한 경우 3배까지 올린 건물주도 있었다. 비슷한 피해를 본 또 다른 교민 B씨는 “받아들일 수 없는 임대료를 요구하는 경우는 그냥 나가라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최근 들어 호치민시의 상가 임대료는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아파트나 주택과 비교하면 상승폭이 예사롭지 않다.
베트남 부동산 거래 사이트인 Batdongsan에 따르면, 2019년 호치민시의 상가 임대료는 전년 대비 35%나 상승했다. 2019년 4분기 호치민시 상가 평균 임대료는 7000USD에 달했다. 반면 상가 매매가는 10% 가량 올랐다. 임대료 상승폭이 매매가보다 3배 이상 높았던 것이다.
이처럼 치솟는 상가 임대료는 호치민 전 지역에 걸쳐 일어나고 있는 추세다. 급격한 산업화에 따른 수요증가로 가격이 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비상식적인 상승률을 나타나는 경우가 푸미흥에서 유독 자주 나타나고 있다. 특히 푸미흥은 수많은 한인 소상공인들이 생업을 이어가고 있는 터전이다. 안 그래도 임대료에 부담을 느끼는 소상공인들이 적지 않은 가운데 최근 일어나고 있는 상황은 이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들어 푸미흥에 자본력을 갖춘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들만 성업 중인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푸미흥 소상공인지회 이재근 지회장은 “임대료가 너무 가파르게 오르고 있어 우리 같은 소상공인들이 무척 어렵다”며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많은 한국인들이 이곳을 떠나고 푸미흥 경제에도 마이너스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임차인들의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임대료를 올리는 악덕 건물주들도 물론 존재한다. 상생보다는 자신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그들의 행태가 못마땅하지만 마냥 비난할 수도 없다. 보유한 자산을 통해 최대한의 수익을 내고자 하는 의도는 누구나 가질 수 있다. 더구나 대다수 건물주들은 베트남인이다. 그들이 외국인 임차인의 사정을 봐 줘야 할 의무도 없다.
그러나 한꺼번에 두 배 이상 임대료를 올리는 행태는 생각해 볼 문제다. 말도 안 되는 가격을 제시했을 때는, 누군가가 그 가격에 계약을 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전에는 하기 어렵다. 안타깝게도 푸미흥의 상가는 한정돼 있고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임차인들은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비싼 임대료를 주고 계약을 맺는데, 이것이 꼬리를 물면서 주변 임대료까지 치솟는 구조다.
임대료 상승 부추기는 세력은 누구?
건물주들이 주변 시세를 직접 고려해 임대료를 올리기도 하지만, 문제는 이를 부추기는 세력이 있다. 일부 부동산들이다.
호치민시의 한 부동산 회사에서 근무했던 교민 C씨는 “일부 부동산 업자들은 재계약이 임박한 상가 주인들에게 접근해 현재 임차인을 내보내면 더 많은 임대 수익을 보장하겠다고 유혹한다. 건물주 입장에서는 이런 유혹을 떨쳐내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C씨는 “한 번은 내가 아는 부동산에서 주변 시세보다 2배 높은 임대료를 건물주에게 제안했다. 처음에 건물주는 너무 높은 것 아니냐며 난색을 표했는데 결국은 그 가격에 누군가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마치 바이러스가 전파되듯이 점포 한 곳의 임대료가 크게 오르면 주변 상가들도 따라서 오르게 된다.
또 다른 호치민시 부동산 업자는 “임대료를 갑자기 크게 올리면 처음 한 두 달은 임대가 안 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계약이 조금 늦어지더라도 수요에 비해 공급이 달리다보니 늦게라도 계약은 된다. 그렇게 따지면 건물주들은 결국 이익”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상황에 한국의 투기 세력까지 몰려들며 상황이 악화되기도 한다. 최근 한국에서 부동산 관련 각종 규제가 나오면서 투기 세력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는데, 베트남도 중요한 타깃이 되고 있다. 주로 아파트에 투자하는 경우가 많지만 일부는 상가를 재임대하는 형식으로 수익을 올리는 사례도 있다. 상가 재임대는 건물주가 양해하는 경우에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호치민시에서 여행사를 하는 D씨는 얼마 전 한국에서 온 세 명을 가이드하며 이 같은 경우를 목격했다고 한다. 이들은 푸미흥에 본거지를 둔 대형 부동산과 접촉해 푸미흥 여러 곳의 상가를 임대한 뒤 높은 임대료를 받고 재임대를 하는 계획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D씨는 “기존 임대료 대비해 50% 가량 올려서 받으려는 것 같았다. 부동산 측이 이와 관련해 어드바이스를 해줬다”고 말했다. 한국의 투기 세력과 현지 부동산이 기획해 푸미흥의 임대료 상승을 주도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모든 부동산들이 이런 식의 영업을 하는 것은 아니다. 부동산 역시 같은 소상공인들이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많은 부동산들은 현재의 상황에 비판적인 시각을 나타내기도 한다. 푸미흥 하나부동산 최판식 대표는 “푸미흥 일대 임대료를 치솟게 만드는 일부 세력들의 횡포는 이미 몇 년 전부터 문제였다. 부동산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무척 부끄럽다. 부동산 업계도 자정작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