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0주년 기획 특집시리즈] 아세안 50년, 변방에서 중심으로

“손잡으려는 나라 줄섰다” 아세안 외교시대 눈앞

1부: 통합의 반세기ㆍ2회: 외교무대의 주역

北 안보리결의 이행 압박 성명
북한 감싸고 돈다는 편견 깨
中에 우호적인 동해 초안
비공식 회담 통해 중립 지켜
美中 외교 존재감 부각
6억5000만명 경제력 바탕
협력체 통해 안보이익 극대
각국이 협력파트너로 러브콜
한국내에서도 가입 주장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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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위치한 아세안 본부. 1981년 지어진 이 건물 옆으로 지하 2층, 지상 16층 규모의 새로운 아세안 본부 건물 신축이 추진되고 있다. 구 본부 건물은 신관 완공 이후 리모델링을 거쳐 아세안 업무 관련 용도로 사용될 예정이다. 아세안 홈페이지

지난 12일 오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근교의 한 골프장. 이틀 전까지 필리핀 마닐라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막후에서 뛰던 외교관들이 함께 라운딩에 나섰다.

역내 최대 다자안보협의체인 ARF 폐막 직후였던 만큼 라운딩의 화제는 당연히 회의 결과로 집중됐다. 자연스럽게 회의 결과에 대한 각국의 탐색전도 이어졌는데, 모임에 참석한 한 외교관은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이 예전의 아세안이 아니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라며 “특히 ARF 참여국인 북한을 특별성명을 통해 한 목소리로 압박한 아세안 외교장관들의 모습에 다수가 적잖게 놀랐다”고 전했다.

사상 처음 한 목소리 낸 아세안

아세안 외교장관들이 별도 성명으로 특정 국가에 목소리를 낸 것은 아세안 창설 50년 래 처음 있는 일. 특히 북한 문제에 관한 한 아세안 10개국은 다양한 입장과 외교정책 차이로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왔다. 이 때문에 아세안은 북한을 감싸고 돈다는 비판도 더러 받았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특별성명으로 북한에 엄중히 경종을 울리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관련 결의 의무를 신속히 이행하라고까지 요구했다. 10개국 외교장관들이 북한 문제로 네 차례나 사전 모임을 가진 결과물이었다. 특유의 중립, 비동맹주의로 북한을 감싼다는 선입견을 불식하고도 남는 ‘사건’이었다.

특히 별도 성명을 신속하게 발표한 것 자체가 성명 수위를 배가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성명은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필리핀에 도착하기 하루 전, 유엔 안보리의 새로운 대북 제재 결의안이 나오기 불과 몇 시간 전에 전격 발표됐다. 수린 피추완 전 아세안 사무총장은 “재직 당시(2008~2012년)에는 무엇을 하나 결정하더라도 절차와 과정이 복잡해 잘 뭉치지 않아 힘들었다”며 “하지만 동해 영유권 갈등, 한반도 문제가 해결돼야 지역이 더 평화롭고 발전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회원국들의 생각이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아세안 외교장관들은 동해 문제와 관련해서도 의장국(필리핀)이 중국에 보다 우호적인 성명 초안을 들고 나오자 수차례의 비공식 회담을 통해 작년 수준의 중립적 입장을 다시 이끌어 냈다. 동해를 두고 첨예하게 부딪히고 있는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아세안의 존재감을 부각시킨 것이다.

평화의 촉매자 아세안

27개국이 참여하는 ARF무대를 배경으로 펼쳐진 10개국의 일사불란한 모습은 아세안의 단합과 세계 외교 무대에서의 중심성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지만 시계를 조금만 뒤로 돌려도 분위기는 판이하다. 각종 이슈에 대한 아세안의 입장을 담은 코뮤니케(공동성명) 마련이 아세안 차원에서 여러 차례 시도됐지만 10개국은 공동입장 도출에 번번이 실패했고, 이렇듯 무기력한 모습 속에서 아세안은 ‘약체 국가들의 모임’이라는 조롱을 받기도 했다. 또 아세안이 냉전시대의 산물인 만큼 냉전의 종식과 함께 쇠퇴가 점쳐지기도 했다.

그러나 창설 50년 만에 가장 성공한 국제기구의 반열에 오르면서 아세안의 위상은 180도 달라졌다. 키쇼어 마부바니 전 싱가포르 외교장관은 저서 ‘아세안의 기적’에서 “1967년 창설 이후 아세안내 어떤 나라도 전쟁을 하지 않았다”며 “이것만으로도 아세안은 노벨평화상을 받을 자격이 된다”고 주장했다. 2012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유럽연합(EU) 못지 않게 지역평화 유지에 크게 기여했다는 뜻이다.

한 때 ‘아시아의 발칸’으로 불리던 아세안이 이처럼 국제사회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다. 냉전 종식(1990년) 전까지의 활동은 주로 반공에 초점이 맞춰져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기 어려웠고 1997ㆍ98년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한중일(아세안+3)이 가세한 뒤 2005년 동아시아 정상회의(EAS)가 출범하면서 미국과 중국이 아세안과 관계를 본격 구축, 주가가 급등했다. 호세 타버스 아세안 총국장은 ”아세안은 현재 한국 등 11개 대화상대국, 스위스 등 3개 부분대화상대국, 개발파트너인 독일과 협업 중”이라며 “북한 등 전 세계 25개국이 대화상대국 신청을 해놓은 상태이고 5개 지역기구로부터 협력 요청 러브콜을 받아 놓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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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박한 아세안 시대

아세안이 세계외교의 주축으로 부상하게 된 주된 요인으로는 무엇보다 지역 안정과 이를 기반으로 한 경제성장이 꼽힌다. 동아시아ㆍ아세안 경제연구소(ERIA) 폰치아노 인탈 박사는 “자체적인 정치 안보 협력을 바탕으로 아세안은 대외 외교 노선 구축, 주요국들과의 외교안보 메커니즘을 완성했다”며 “이는 역내ㆍ외 주요국들이 동남아 지역에 대한 관여 및 관심을 환기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이를 통해 반세기 동안 평화를 이어올 수 있었고, 6억3,500만의 역내 인구, 5% 이상의 경제성장률, 경제규모 2조5,500억달러의 경제공동체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의미이다.

아세안은 현재 아세안+3,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아세안지역포럼(ARF), 아세안 확대 국방장관회의체(ADMM+) 등 다각적이며 다층적인 지역협력체를 통해 경제ㆍ안보 이익을 극대화하고 있다. 아세안과 손잡기 위한 세계 각국이 아세안 본부가 있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로 러시를 이루고 있다. 아세안 관계자는 “한국을 비롯해 아세안 상주 대표부가 20개를 넘어섰고 지난 4월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아세안 사무국을 찾는 등 각국 고위인사들의 방문도 줄을 잇고 있다”고 전했다.

국내 일각에서는 한국이 아세안에 가입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윤영관 전 외교통상부장관은 “한국은 중국과 미국 사이에 낀 횡축외교에서 동남아에 무게를 둔 종축외교로도 보폭을 넓힐 필요가 있다”며 “이를 통해 북한문제 등 여러 외교 안보 현안에 보다 유리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카르타(인도네시아)ㆍ방콕(태국)ㆍ호찌민= 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마닐라(필리핀)=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서정인 주아세안 대표부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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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정인 주아세안대표부 대사

서정인 주아세안대표부 대사는 한국과 아세안에 대해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앞으로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사이’로 규정했다.

인접한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었던 덕분에 “복잡한 과거사 문제도 없고 다툴 영토문제도 없어 기본적으로 우호를 꾀하기 유리한 조건”이라는 것이다.

세계 각국은 외교무대의 주역으로 부상한 아세안을 끌어안기 위해 경쟁하고 있는 상황. 서 대사는 “한국은 과거 그들과 비슷한 처지의 나라였지만 지금은 그들이 부러워하는, 가장 닮고 싶어 하는 나라가 됐다”며 “우리가 어떻게 그들을 대하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관계는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세안의 마음을 얻는데 한국이 가진 입지를 십분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양측 교류는 이미 광범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게 서 대사의 진단이다. 그는 “아세안은 지난해 한국인 600만명이 찾은 1대 방문지이자 8,000개의 한국 기업이 진출해 있는 곳”이라며 “경제, 사회적으로 왕성한 교류를 하고 있는 만큼 상생의 정신으로 관계를 이어 간다면 지속 가능한 공동번영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세안의 많은 나라가 식민지 경험이 있고, 이로 인해 강대국들 사이에서 어떤 편에 서는 데 대한 두려움이 있는 만큼 한국이 이들에게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2015년 4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임지로 부임한 서 대사는 한국 외교의 주요 축으로 부상한 아세안과의 외교 최전선에서 뛰고 있다.

아세안이 닮고 싶어하는 한국이지만, 아세안은 한국에도 기회다. 그는 “아세안은 연평균 5%이상씩 성장하는 인구 6억3,500만의 땅”이라며 “소득 증가에 맞춰 도시화도 빠른 속도록 진행되고 있는 만큼 이 과정에서 많은 한국 기업이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장하고 있는 아세안이 한국 경제의 신성장 활로가 될 수 있는 만큼, 보다 관심을 갖고 들여다봐야 한다는 얘기다.

자카르타=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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