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용한자 2100자로 배우는 베트남어]

서문

베트남어의 낱말은 1850년경 서구 식민지시대의 포르투칼,프랑스신부들이 베트남에 들어와서 베트남포교를 하는 과정에 자국어의 발음에 따라 알파벳표기로 바꾼 것을 베트남인들이 한문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이 체계에 따른 것에서 만들어진 문자이다.

우선 베트남어 문자의 어원에 대하여 잠시 알아보면 베트남 문자는 베트남역사와 절대적인 상관관계에 발생한 문자라는 것이다.

쉽게 설명하면 우리나라의 경우는 일제식민지 36년의 지배과정에 소위 “창씨개명(創氏改名)”이라는 미명하에 한국인 고유의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게 하는 과정에 1945년 일본이 대동아전쟁에 패배함으로서 한국은 일본어 사용이 중지 되었다.

그러나 베트남은 역사상 사이공이 월남영토로 편입된 것은 14세기 즉 우리나라의 세종대왕시대이다. 그러므로 북부 홍강유역 즉 현재의 수도인 하노이 중심의 교주 즉 안남도호부의 수도지역은 항상 중국의 지배하에서 1000년간의 중국의 식민지와 독립을 번복하였다.

그러다가 1945년 다른 동남아 제국이 식민지치하에서 독립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은 1850년대에 시작된 100년간의 프랑스 식민지치하를 벗어나지 못하고 우리보다 10년이 지난 1955년도에 비로소 독립을 하게 된다.

우리나라가 1945년 독립으로부터 5년간의 혼란 후 625내전을 거치고 516혁명까지 거의 15년간 혼돈의 연속이었듯이 베트남도 독립 후 극심한 국내의 혼란와중에 프랑스 식민지 잔재를 걷어 내기도 전에 미국이 남부에 북부는 소련이 진주하여 남북으로 분단된 상태에서 내전이 일어나 1975년 까지 20년간 장기내전을 겪었다.

우리나라가 한글이 1443년 세종대왕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우리국민의 발음과 일치하는 고유문자를 만들어 내었으나 거의 460년동안 일반화 되지 못하고 “언문(諺文)”이라는 소위 서민문자로서 천대를 받는다. 즉 발음은 한글로 하되 문자는 한문으로 쓰며 특히 지식층이나 지배자 계급은 한문으로 전용하였다.

1890년대에 주시경(周時經)선생님의 “국어문법”과 “국어문전음학”, 1906년 “대한국어문법”등의 연구를 거쳐 현대적인 체계화가 진행되었다. 지석영 선생님이 주도하고 주시경선생님도 참여한 “국문연구회”와 1930년 12월 13일 조선어학회 총회에서 제정한 “한글맞춤법통일안”이 1933년 10월 29일 반포되고 1948년10월 9일 한글전용에 대한 법률 제6호로 정부의 국무회의를 통과하였다.

결국 한글전용에 대한 법률이 제정되기까지 훈민정음(訓民正音)은 창제후 500년간 구체적인 나라의 법으로서 확정된 바 없이 한문과 혼용을 통하여 살아남았다.

이와 같은 실제적인 한글의 체계화가 불과 100년 남짓한 역사를 지닌 것과 같이 베트남어도 1850년대부터 1955년 독립시기까지 거의 100년간의 프랑스 식민지 통치시대를 거치는 동안 우리나라의 창씨개명에 해당하는 프랑스지배시대의 실제 사용 임상실험을 통하여 확정된 문자이다.

한국과 베트남 모두 국어로서의 한글이 한문에 바탕을 두고 우리 고유의 발음을 한글로 표기한데 비하여 베트남어는 한글과 같은 독자적인 기호를 사용하지 않고 역시 한문에 바탕을 두고 알파벳 표기를 차용한 것만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따라서 결국 한국과 베트남은 같은 한자 문화권으로서 한자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 그 문자의 표기만 다를 뿐 음성적인 발음면에서 유사성을 많이 가지고 있다.

한국의 음운학자들 간에 한자문화권인 중국,일본,한국,베트남에서 5세기 고대 당나라의 한자발음을 그대로 간직한 나라로서 베트남과 한국이라고 주장한 바가 있듯이 베트남어가 한국어 발음과 비슷한 것이 많아 오히려 중국, 일본 사람들에 비하여 배우기가 쉽다고 볼 수가 있다.

우리말 중에 사용빈도가 높은 한자 2100자를 토대로 하여 한자로 배워보는 베트남어 공부방법을 통하여 20,000단어를 습득하여 보자.

[반명근 VIETASIA LAWFIRM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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