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문화 기획특집 ] 제1부 – 천강상일주사(天江上一柱寺):베트남 불교사

255-16-1

▲ 기둥하나인 절(Chua Mot Cot), 바딘,하노이

역자 서문

베트남 문화 특히 대승불교문화의 흔적을 찾아서 기나긴 여행을 하기로 결심하고 그 첫 번의 단추를 베트남 불교사로 끼어 보았다. 영문으로 된 명지(明枝), 하문진(河文進), 원재서(阮才書) 삼인의 공저를 한글로 옮기는 과정에 구태여 베트남어의 원음을 차용하지 않았다. 그것은 베트남의 한문 발음이 우리 한글과 많은 차이를 보임으로 우리에게 보다 친근한 한문을 한자로 발음한 형태를 따랐다.

동남아 한자문화권 중 유일하게 17세기부터 로마자 표기로 전환한 베트남의 문화에 대한 우리불교문화와의 동질성을 확인하는데 이러한 방법이 좀 더 나을 것이라는 소견으로 결정한 소치이다.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에서 동쪽 끝 반도인 우리나라에 까지 이르고 마침내 바다를 건너 일본이라는 극동에 도달한 불교는 마침내 일본에서 불국토를 이룬다. 베트남은 이 긴 불교전파의 긴 여로에 항상 거처 가는 행로였기에 이미 기원후 200년경에 중국의 문헌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베트남은 이 무역상들의 교역로를 따라 불교가 전파된 것이 최초이다. 베트남에는 역사적으로 우리나라보다 약 200년 정도 앞서 이미 불교가 전래된 것으로 보이며 우리가 중국이라는 나라를 거쳐 불교를 받아들였다면 베트남은 인도에서 직접 불교를 직수입하였다고 보여 진다. 물론 당시 베트남 북부 하노이 근방의 교지가 중국의 지방영토였으며 남부의 부남국 등이 별개의 국가형태를 갖추고 있었으므로 구태여 베트남불교문화라고 칭하는 것이 깊이 생각하면 모순적일 수 있다. 그러나 문화권이란 결국 영역으로 나누어야 분류가 가능하다고 보면 오늘날의 국가의 영토로 분리하여 하나의 클러스터로 분석하는 것도 또한 의미 있는 작업이다.

참고로 본서의 제목인 천강상일주사(天江上一柱寺)라는 뜻은 “천개의 강에 세운 기둥 하나인 절”이란 의미로 우리나라 신라시대인 6세기 중국 당나라 승려인 의정(義淨:635-713)스님의 대당서역구법고승전에 이르기를 교주에서 부남국에 이르는 길에 수 많은 강을 일컬어 천강의 나라(千江國)라고 한 것을 인용한 것이다. 그리고 일주사(一柱寺)란 베트남의 대다수의 절에 가보면 연못가운데 기둥 하나인 절의 모양을 건조하여 놓은 것을 볼 수 있는데 역자는 이 기둥 하나의 절이 마치 화엄 일승 사상과 같이 하나 속에 여럿이 있고 여럿 속에 하나가 있다는 불타의 가르침을 잘 구현하여 놓은 것이라고 여겨서 이와 같이 이름 지어 보았다.

프롤로그

불교는 원래 인디아를 그 본산(本山)으로 한다. 시조(始祖)인 가오타마 씨족의 싯다르타는 정반왕의 아들로 왕자였다. 그는 기원전 약 563년에 수도인 카필라바투의 룸비니 동산(오늘날 히말라야 산록의 남부 네팔 소재)에서 태어났다. 샤카무니란 그가 부처의 지위에 오른 이후에 그의 제자들이 그에게 붙여준 이름이다.

그의 활동 지역은 인도 중북부의 갠지스 삼각주 지방이었다. 고대 인도사회의 엄격한 카스트제도 하에서 노예의 비참한 생활과 힘없는 사람들이 사회에서 인생고로 어려움을 당하는 것을 보고 싯다르타는 그의 호화로운 생활을 버리고 인류 구원의 교의를 설교하기 위한 길을 찾아 떠났다. 그리하여 그의 나이 29세에 왕궁을 떠났다. 나이 35세 때 피팔(보리수)나무 아래에서 명상에 잠겨있는 동안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 이후 그는 여러 지역을 여행하면서 그의 교의를 전파하였다. 그의 새로운 종교는 인도의 여러 지역으로 퍼져나가 불교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싯다르타는 나이 80세에 입멸하였다.

그의 생애 동안 샤카무니는 책을 쓰지 않았다. 그는 단지 그의 제자들과 토론하고 의견을 주고받았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수년이 지난 후에 그의 가르침은 교의의 책(수트라), 계율의 책(비나야스), 형이상학(아비다르마)으로 편찬되었다. 샤캬무니의 사후 불교는 여러 갈래로 분열하였는데 가장 큰 두 류파가 히나야나(小乘:작은 수레)와 마하야나(大乘:큰 수레)이다.

히나야나는 남부인도에서 발전하여 스리랑카, 미얀마, 타이란드, 캄보 디아 ,라오스를 지나 전파되었다. 이를 ‘남방 불교’ 혹은 그 책이 팔리어로 씌어졌다 하여 ‘팔리 불교’라고도 불린다. 마하야나는 북부인도에서 발전하여 티벳, 중국, 일본등지로 전파되었다. 이는 ‘북방불교’ 혹은 그 책이 산스크리트어로 씌어졌다하여 산스크리트불교라고 불린다.

불교가 베트남에 들어 온 것은 기원 직후였다. 베트남은 중국의 지배하에 있었으며 베트남 사회는 두 계급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상류계급은 중국인 지배층과 그들의 베트남 대리인으로 중국세계에 심취한 유교학자들이었다. 하류계급은 물 논에서 벼농사를 지으면 살아가는 토착의 농부들이었다. 그들은 하늘의 힘을 믿었고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한편으로는 구름, 비, 천둥, 번개, 산, 강과 다른 자연 현상을 하느님이라 여기고 이들이 인간을 도우거나 불행을 준다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두 계급 모두 불교에 약간 이상한 경향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는 기존의 믿음에 충돌 없이 급속하게 베트남에 뿌리를 내렸다. 더불어 불교는 인류의 고통을 새롭게 해석하여 고통으로부터 해방되게도 하고 많은 세대에 걸쳐 그들에게 고통을 가져다주기도 하였다.

[반명근 VIETASIA LAWFIRM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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