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본질과 위기 돌파를 위한 제언

나라 안팎으로 어려움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정치적으로는 사상초유의 대통령 탄핵에 이어서 적폐청산을 기치로 여야, 좌우, 보수 對 진보 간의 다툼이 치열하다. 경제적으로는 가진자와 덜 가진자, 대기업과 중소기업, 경영자와 노동자 간 반목이 극에 달하고 있다. 사회적으로는 남녀, 기성세대와 청년층, 종교.계층 간 간극이 커져만 간다. 문화적으로는 문화를 즐길만한 여유 여부에 따라서, 또는 정치색에 따른 이분법적 분리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글로벌적으로는 미국 對 다른 나라, 여전한 냉전 구도인 민주주의 국가 對 사회주의 국가, 빈부격차에 따른 호불호, 세계 對 북한, 남-북 등 대결구도 또한 확고하다. 지역적으로는 수도권 對 비수도권,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지역갈등도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어려움의 기저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경쟁과 신뢰문제’로 요약할 수 있다. 사실, 경쟁은 자연계에선 생존전략이다. 생명체는 살아남아야 의미가 있다. 신뢰는 다같이 함께 살아가는데 있어서 자신과 다른 생명체의 공생관계를 정의한다. 어려움은 극복되어야 한다. 갈등[葛藤], 칡과 등나무처럼 엉켜만 있어선 안되고 어느정도 해소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어려움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다.

다툼은 우리 민족의 특성 중 하나이기도 하다. 같은 마을이라도 아래-위 동네끼리, 영호남 전라도-경상도, 동-서,남-북, 신탁-반탁, 동인-서인, 남인-북인, 노론-소론,,, 솔직히, 우리민족에겐 늘 편갈라서 싸우는 게 일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시에는 물론이고 전쟁 중에도 심지어 일본 식민치하에서도 다툼은 이어졌다. 믿을만한 지도자가 없고, 기댈만한 이웃이 없어서 오로지 믿을 것이라고는 자기 자신과 가족뿐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작용했다고 보여진다. 한마디로 신뢰할 만한 대상이 없어서 생긴 결과라 생각된다.

미투[Me Too] 운동이 바람앞에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미국 할리우드 영화배우들 사이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으며, 우리나라가 유독 심하다. 10년전 길게는 2~30년전, 정계 법조계 연예계 직장 군대 학교 병원을 가리지 않고 거의 모든 분야가 대상이다. 향후 사태추이에 따라서는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서 신뢰문제가 더욱 확산될 수도 있다. ‘고름이 살 되지 않듯이’ 썩은 부분은 도려내야 새 살이 돋는다. 하지만, 교각살우의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남과 여가 서로 믿지 못하고, 같이 일하는 동료를 신뢰하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 또한 심각하다.

‘신뢰받는 정부만이 신용을 얻는다[Good faith was one of the secret of government credit.]’고 했다. 국가 존립을 위해서도 우리를 둘러싼 어려움 극복은 반드시 필요하다.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기 전에 하나씩 해결되었으면 좋겠다. 누가 누굴 탓하기엔 너무 한가하고, 엄격한 잘못은 서로 인정하고,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고, 피해자는 이해하는 선순환을 기대해 본다. 경쟁에 내몰려 각자도생[各自圖生]만 고집하다보면 모두가 공멸 할수도 있고, 신뢰없는 사회는 그 자체로 무의미하다.

어려움, 문제가 있는 곳에서 답도 있기 마련이다. 애써 외면하면 안된다. 특히 책임있는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솔선수범 할 일이다.

대통령, 정치인, 군인, 관료, 기업가, 경영자, 종교인, 연예인 등 그 누구의 권력과 명예도 사실상 일반 국민들로부터 위임받아 행해야 하는 자리들이다. 역사는 엄하게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내 것, 내 능력이라고 착각하는 순간 모든 것이 흐트러지고, 종국에는 자기 자신을 옭아메는 올가미가 될 수도 있다.

잘 사는 것[Living Well]은 윤리와 도덕을 기초로, 남들 보기에 좋아 보이는 삶이 아니라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개인적이건 국가적이건 어려움, 지혜롭게 극복해야 한다. 그래야 미래가 있다.

칼럼리스크 최 근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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