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불교문화 특집] 제9부

이씨 왕조(1010~1225)하의 선종

263-16-1

1. 비니타루치 선종
선원집영에 전하는 계보에 의하면 이씨왕조하의 비니타루치 선종은 11대부터 19세손까지 발전하였음을 알 수가 있다.

선원집영에서 언급한 말이나 게송을 가지고 승려를 연구하는 방법에 따르면, 이씨왕조하의 선종 제파(諸派)에 대한 성격을 인식하기는 어렵다. 사실 이 여러 종파는 수세기 동안 병존하면서 서로 간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확실한 밀교는 비니타루치선종에서 볼 수가 있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종파의 많은 승려들은 밀교를 수련하기를 정(丁)과 여(黎)씨왕조로부터 이미 시작하여 이씨왕조까지 이를 이어갔다.

자도행(慈道行)선사는 전형적인 이러한 종류의 승녀이다. 도행선사의 전기에는 이에 관한 많은 이적에 대한 기사가 있다. 그는 마법의 지팡이를 들고 마법을 행하거나, 죽었다가 아기로 다시 태어난다거나 하는 등의 마법을 행하였다. “선사는 종종 뱀이나 야생동물을 불러 모아 그를 지키게 하였다. 그는 그의 손가락을 태워 비를 내리게 하거나 성수(聖水)로 병을 치료하였다…”

도행(道行)선사의 제자 명공(明空)선사는 왕 신종(神宗)의 중한 병을 그의 주력을 사용하여 고친 것으로 높은 명성을 얻었다. 명공선사와 같은 세대인 선임(禪壬)선사 또한 이러한 능력의 달인으로 유명하였다.

“그는 총지(聰智)다라니의 심수를 깨달았다… 그는 나라의 모든 기우제(祈雨祭)와 전염병의 박멸을 관장하였다…”

15세손 계공(戒空)선사는 “야생동물을 굴복시키고 영을 부릴 수 있었으며 성수(聖水)로 하루에도 병자 수 천 명을 치료하였다.”

계공선사의 제자 지천(智天)선사는 소헌성(蘇憲成)장군에 의하여 승통으로 추대되어 “자선(慈山)에서 호랑이를 그 앞에 불러 무릎을 꿇게 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것은 비나타루치선종이 다른 종파에 비하여 이적을 행하는 것을 명백히 하는 것을 말해 준다. 또한 철학적인 문제에도 관심이 있었음을 알게 하여 준다. 이러한 문제 중의 하나가 “유(有)”와 “무(無)” “존재(存在)”와 “비존재(非存在)”등의 질문이다. 비니타루치선종의 선사들은 이 “실존(實存)” 과 “무실존(無實存)”의 관념에 치우치는 것을 배타하고, 이러한 관념에 집착하는 것을 멀리하는 것으로 문제를 풀고자 하였다.

혜생(慧生)선사는 이 문제에 대한 자신의 보는 관점을 이태조(李太祖)왕의 물음에 게송(偈頌)으로 대답하였다.

이 태조가 물었다.
“프라즈나(깨달음)는 니힐리즘(虛無主義)이네,
네가 없음으로써 내가 있고,
과거불, 현재불, 미래불의
가르침의 근본은 같다네.”

이 태조는 마하야나의 니힐리즘의 관점을 요약하여 말한 것이다.

혜생은 다음과 같이 답하였다.
“존재한다고 하지만 존재하는 것은 없습니다.
있는 것은 물론 없는 것도 없습니다,
이것을 알고 나면,
부처에 가까이 간 것입니다,
랑카바타라의 달빛이 고요한데,
빈 배는 바다를 지난다.
‘없는 것이 없음’이 곧 “있음”입니다,
아서라 사마티가 다 이 속에 있는 것을”

혜생은 “존재(存在)”와 “존재없음”에 집착하는 것을 비난하고 태조에게 이 문제의 자가당착에 빠지지 않도록 조언하고 있다.

이 개념은 랑카바트라에서 말하는 사마타(동화)의 관념에 기초를 두었다고 보여지는 “살아있는 생물과 부처가 조화롭게 살 수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혜생은 이와같은 개념을 고요한 달밤에 하나의 빈 배가 소리 없이 떠있는 아름다운 이미지로 그의 게송을 통하여 묘사하였다.

비니타루치선종의 선사들은 “존재”와 “비존재”의 개념의 시발을 “생(生)”과 “사(死)”의 개념에 담았다. 그들의 관점은 무한대의 극복하여야 할 대상인 삶과 죽음의 두 개의 양상이 같은 관념이라는 것이다.

지팔(知八)선사는 그의 게송에서 이 질문에 대한 그의 관점을 상술(詳述)하였다.

“태어남이 있는 곳에 죽음이 있다.
죽음이 있는 곳에 태어남이 있다.
죽음의 문제 이전에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가엾은 것이며
태어나는 문제는 즐거운 것이다.
슬픔이나 기쁨이라는 것은 무한한 것이니
자연적으로 그들은 서로 마주보는 것이다.
죽음이던 삶이던 그대로 두어라.
옴 수루 수루 스리!(오 생긴 대로 둘 것이로다)!”

다른 불교의 개념에 대하여 비니타루치선종은 무언통(無言通)의 관점을 차용하였다.

2. 무언통(無言通: 말함이 없이 깨우침) 선종

선원집영에 따르면 이씨왕조에서의 무언통(無言通)의 선종은 5세부터 15세까지 발전하였다. 우리가 살펴 본 바와 같이 베트남의 무언통(無言通)선종은 19세기 초반에 개창되었다. 중국의 남종(南宗)의 영향을 받은 무언통선종은 상당히 강하였다.

이념적으로 말하자면 이씨왕조까지 베트남의 무언통선종은 중국 남종의 선사들과 같은 이념의 어떤 부분에 역할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 관점의 일부는 북종(北宗)의 점오(漸悟:점차 깨우침)를 발현하게 하였고 돈오(頓悟:단박에 깨우침)를 지지하는 요소를 가지고 있다.

점오(漸悟)는 진리를 계발(啓發)하는 지식을 수트라를 배우고 인용하며 이론적인 학습을 통하여 점차적으로 성취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문자와 언어를 이용한 깨달음의 성취를 말한다.

돈오(頓悟)는 진리의 진수를 단박에 깨치는 것으로 문자나 언어가 없이 프라즈나의 지혜의 빛이 비쳐 나온다는 것이다. 무언통의 이름은 이러한 관점에 연원한 것이다. 돈오의 이러한 관점은 남종과 무언통선종의 본질에 기초한 것이다.

이들 선종에 따르면 모든 “물질”은 현상(現象)의 세계를 말하는 것인데 “텅 비어 있음”이다. 우리의 눈앞에 나타나는 이 세계는 “환각(幻覺)”이다. 이 형이상학은 인도의 마디야미카 학교와 고전 프라즈나 불교학의 성공(性空:순야나)에 근본을 둔 것인데 무언통선종에 의하여 되풀이 하여 사용된 것이다.

6세손 정향(定香:-1054)선사는 말하였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원조라는 것은 없다. 원조가 있다면 그것은 진리의 길일 것이다. 그러나 진리의 길 또한 환각인 것이다. ‘존재’라는 것이 환각이라면 ‘존재 없음’ 또한 텅 빈 것이다.”

무언통 선종에서 다른 선종과 같이 모든 사물이 텅빈 것이며 환상이라고 믿는 것은 불교선종의 근본적인 영역에 있어 정신에 대하여 특별히 강조하였다. 정신은 현상세계나 사물의 근본으로 생각되었다. 정신과 물질의 상관 관계는 무언통의 7세손 구지선사에게서 명백하게 개창되었다.

“모든 이론은 성격적으로 근원이 있다. 모든 성격은 그 근원을 정신에 둔다. 정신과 물질은 하나이며 둘이 아니다. 은혜나 슬픔은 이 모두가 텅 빈 것이다. 죄나 희사(喜捨), 진실과 거짓 등등… 모든 것이 환상이다. 모든 것은 원인과 결과가 있다. 먼저 존재로부터 응보가 있음을 떼어 놓을 수가 없으며 응보로부터 먼저 존재한 것을 분리 할 수가 없다. 안다는 것은 평온함 뿐만 아니라 만족을 가져오지 않는다. 아무것도 볼 수 없다는 것은 다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은 다 안다는 것이다.

이씨왕조의 무언통선종은 비니타루치의 선종에 비하여 그 정도가 낮기는 하지만 역시 밀교의 영향을 받았다. 선원집영에 따르면 공로(空路)선사는 다라니에 정통하여 “하늘을 날고, 물위를 걸으며, 호랑이와 용을 조복시키고, 이간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수많은 이적을 행하였다”고 전한다. 그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도교적인 시를 남기기도 했다.

무언통선종은 또한 도교의 영향도 받았다. 이 선종의 선사들이 추구한 라타타의 개념은 그 과정에 있어서 노자(老子)와 매우 밀접하였다. 노자의 정신과 형태는 현광(現光:-1221)선사의 다음의 시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허유(許維)와 같이 행하는 것은
세월이 가는 곳에서 세상을 굽어보며
여러 해 봄을 보내고
자유롭고 한가로운 생을 즐기며
유유자적하는 미덕을 가리키는 것이니라.”

원저자: 명지(明枝), 하문진(河文進), 원재서(阮才書)
역 자: 반명근 VIETASIA LAWFIRM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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