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의 소리 왕, 민떰

지난 세월 혼이 담긴 소리를 창조해, 소리의 마술사라 불리기도

 

[은퇴 후 몇 십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한때 베트남의 소리 왕으로 불리던 예술가 민떰(Minh Tâm) 씨의 열정(“máu nghề”)은 여전히 감소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나이에도 그는 여전히 그가 예술에 종사하던 때의 자세한 내용들을 우리에게 전달해 줄 정도로 총명하다. 우리는 베트남 영화‘수공’의 때를 전해들을 수 있었다.
현재, 베트남 영화는 몇 십 년 전보다 매우 현대적이고 기술적으로 새로운 발전을 내딛었다. 사운드, 조명은 물론 심지어 효과와 기교 등 영화의 주요 요소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술을 갖게 되었다. 이는 베트남 영화의 기분 좋은 신호이다. 하지만, 다른 예술분야에서도 그렇지만, 영화 분야 또한 항상 모든 기술들이 계승되지는 않는다.]

 

은둔자처럼 살고 있는 민떰
“내 시대 때 영화에 사용되는 소리를 직접 손으로 조작해 만들던 것을 현재는 기술이 대체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옛 기술을 전수하고 싶고, 나는 여전히 인식법과 혼이 담긴 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을 후대에 가르치고 싶다. 한 예술가로서 창의성이 멈추면 안 되고 예술작업은 항상 엄숙함과 존중을 필요로 한다”고 민떰 씨는 진심이 담긴 서론을 토해내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은둔지와 같은 그의 주거지를 찾아 가느라 애를 먹었다. 민떰 씨가 살고 있는 곳은 미득(Mỹ Đức)현의 다이(Đáy) 강변에 위치한 한 마을로 이곳은 흐엉(Hương) 유적사원과 함께 불교의 토지로 불리는 곳이다. 매일, 그는 불경을 외고 불교의 진리를 읽는데 시간을 보낸다. 우리는 그가 흥망성쇠로 가득 차 있으며 수십 년 전의 열정으로 가득했던 그의 예술적으로 기념이 될 만한 일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을지, 낯선 외지인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해 줄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우리가 찾아가 그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민떰 씨는 여전히 나이를 먹지 않은 듯한 예전의 열정을 그대로 간직한 예술가로 느껴졌다. 그는 그 자신이 예술에 몸을 담고 있던 시절처럼 여전히 열정적이었다. 떠이띠엔(Tây Tiến, 서진) 군단의 군인으로 복무했었던 그는 항상 당당하고 용감한 외관을 유지하고 있었다. “서진 군인으로서, 옛날부터 지금까지, 또 숨이 멎을 때까지 항상 우람하고 용감히 살아나갈 것이다”라고 방긋 웃으며 우리에게 말했다.

민떰 씨, 그가 한 일은 혼이 담긴 소리를 창조해 내는 것
   다이 강변의 조그만 집에서 봄의 절기가 바뀌어 초여름 햇살이 비추기 시작하는 때 우리는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었다. 이 시기는 민떰 예술가가 가장 몰입하여 헌신했던 시기이자 가장 화려한 성공적인 시기였다.
세월의 흔적이 묻은 그의 양손은 나이가 들어 거칠고 약해졌지만, 소리를 만드는 특수예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는 크고 작은 비닐봉지, 용기, 대나무 빗자루 등을 가져와 우리에게 영화 속 여러 가지 소리들을 재현해주었다. 앉아서‘소리의 왕’이 만들어내는 소리를 들었을 때, 우리는 왜 그가‘소리의 마술사’라고 불리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일 푼의 가치도 없어 보이는 물건들로 그는 혼이 담긴 소리를 창조해내고, 듣는 이로 하여금 하나부터 열까지 놀랍게 했다. 만약, 그의 앞에 앉아 그가 만드는 소리들을 듣는다면, 누구나 “와…, 오….”와 같은 감탄사를 연발하며 저렇게 간단한 것들로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에 신기해 할 것이다. 한 번 보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이것을 생각해 낸 이에게는 특별한 감탄이 있을 것이다. 인생의 소리는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삶에서부터 버려진 혹은 잊혀진 물건들로부터 찾을 수 있다. 삶에 대한 기밀한 관찰력을 가진 그만이 아마 새로운 소리들을 숙고하여 만들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그의 생동감 있고 매력적인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이야기를 들었다. 동시에 우리는 그가 예술에 종사했던 시절의 영화들을 볼 수 있었다. 군단의 열병 소리를 3일 밤낮을 지새워 만들어낸 적이 있는 반면, 몇 소리들은 머리를 쥐어짜내도 생각해 낼 수 없어 길거리를 방랑하던 때에 한 꼬마 아이가 물건을 던지는 것을 보고 영감을 받아 곧 바로 작업을 하러 돌아갔다고 한다.“이 직업은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해결하기 힘든 때가 많았지만, 그 원리를 생각해 냈을 때 흥미와 열정이 되살아난다. 그때 인생의 소리들은 자신의 본능과 반사가 된다…”고 그는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힘든 시기를 보냈어도 그는 낙심하지 않고 여전히 50년 동안 이 예술과 함께 하고 있다.

딸에게 소리 예술을 가르치는 민떰
은퇴 후에도 그는 그의 업을 잇는 유일한 자식인 그의 딸에게 항상 가르치고 있다.“이 예술은 관객들의 마음을 사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을 잃게 하면 안 된다. 그들은 우리가 갖고 있지 않은 권리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싫어할 때 조차도 그들을 반대하지 말고, 그들과 언쟁을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아주 똑같고 좋은 소리를 만들어 내도 관객들이 싫어한다면 그들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개개인의 미학이 다르기 때문이다. 싫고 좋음의 권리는 그들에게 있다. 우리는 양심 및 열과 성을 다하여 일에 종사하면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이것은 아버지가 자기 자식에게 가르치는 말이지만, 후에 영화에 종사하는 후인들에게 전하는 조언으로서 그 가치가 더 크다고 느껴졌다.
그의 무궁한 공헌과 그와 같이 심혈을 다하는 예술가들이 있기에 베트남 영화의 발전도 있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위대한 예술가에게 경의를 표한다.

[베트남통신사_글: 타오비(Thảo Vy)기자, 사진_빗끄엉(Việt Cường)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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