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의 인연-황쑤언빙(Hoàng Xuân Vinh)선수의 성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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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황쑤언빙(Hoàng Xuân Vinh)의 성공에는 3가지 주요한 요소가 있다. 자신의 의지, 응웬티늉(Nguyễn Thị Nhung)코치, 그리고 한국에서 훈련을 하기로 한 결정이다. 2007년, 늉 코치는 익숙한 전지 훈련지인 중국에서 벗어나, 한국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그는 이 결정이 황쑤언빙 선수에게 금메달을 안겨주고, 베트남 사격 계의 큰 발전과 성공을 가져다 준 매우 중요한 결정이었다고 밝혔다. 베트남 언론은 황쑤언빙 선수의 금메달은 지난 수년간 그와 함께 해온 두 명의 스승, 응웬티늉 코치와 한국의 박충건 코치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고 전했다.

중국이 아닌 한국에서 훈련을 시작하다

2007년 초, 응웬티늉 코치는 중국에서의 훈련이 선수들에게 아무런 이득이 없다고 판단하고 베트남 사격 팀의 중국 훈련을 중단했다.

응웬티늉 코치는 “중국 사람들은 사격에 매우 강하지만 우리에게 진심으로 따뜻하게 대해주지 않았습니다. 중국에서 우리는 그저 연습을 하는 많은 연습팀들 중 하나였고, 낡은 장비들을 사용해야 했으며 중국팀의 얼굴조차 볼 수 없었습니다. 이런 훈련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할 때쯤, 운 좋게도 베트남 사격연맹이 몇 차례에 걸친 접촉 끝에 한국 사격연맹과의 교류를 시작하게 되었고 한국 사람들이 매우 진심을 가지고 사람들을 대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한국으로 옮겨와 훈련을 시작하게 되었고, 이곳에서는 한국 팀과 동일한 현대적인 장비를 가지고 훈련을 할 수 있었습니다”라고 소회했다.

이때는 늉 코치가 베트남 사격팀의 코치를 맞게 된지 1년 정도 밖에 안 된 시점이었지만, 그녀는 자신이 맡은 팀을 위해 담대한 결정을 했고, 결국 많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었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사격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고, 18세가 되던 해 자신의 미래가 밝지 않다는 것을 느낀 후 사격 훈련을 그만두고 입시 공부를 시작해 1982년 뜨선(Từ Sơn)체육 대학교에 입학했다. 3년 뒤, 그녀는 러시아의 모스코 체육 대학교에서 연수를 받고, 1989년 다시 베트남으로 돌아와 훈련․경기 하는 일을 다시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그로부터 1년 뒤 그녀는 아이를 가지게 되었고 다시 한 번 스포츠의 길을 그만둬야 했다.

그러던 중 몇 해가 지난 1997년, 당시 베트남 사격연맹 총 서기관이었던 응웬반훙(Nguyễn Văn Hùng)씨의 제안에 응한 그녀는 사격계로 돌아오게 되었다.

응웬티늉 코치는 “당시 제 재정적인 환경이 안정적이었기 때문에 다시 열정을 가지고 꿈을 위해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처음 시작하는 것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주어지는 일이 있으면 그 일을 마다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으며 차분하고 인내심이 많은 성격을 가지고 심판직을 맡으면서 다시 사격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라고 했다. 또한 그녀는 2003년부터 사격 전문가로 일하기 시작했으며 2006년에는 마침내 대표팀 코치를 맡게 되었다.

황쑤언빙의 까다로운 코치

올림픽에서 역사적인 성공을 거두고 난 직후 황쑤언빙 선수는 응웬티늉 코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수상소감으로 전했다. 황쑤언빙 선수는 “코치님이 없었다면 저는 선수로서도, 한 명의 사람으로서도 지금과 같은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코치님은 마치 저의 친 누님 같이 저를 키워주셨습니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선수들 사이에서도 황쑤언빙 선수는 늉 코치의 애제자로 통하고 있다.

늉 코치는 “저는 진지하고 완벽함을 추구하는 성격 탓에 선수들에게 훈련 중일 때뿐만 아니라, 휴식을 취하거나 일상생활 속에서도 휴대폰 사용을 금지시키는 등의 규율들을 강조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선수들의 눈, 시력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에 스마트폰을 장시간 사용하거나 게임을 하는 등의 행동을 코치로서 가만히 두고 볼 수만은 없었습니다. 많은 선수들이 이와 같은 점에 있어서 저의 의견에 동의를 하지 않았고, 팀을 나간 적도 있습니다. 빙 선수와도 여러 차례 이와 같은 마찰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빙 선수는 자신의 위치에 책임감을 가지고 코치로서 제가 요구하는 부분들까지 응하려 늘 노력해왔습니다”라고 전했다.

베트남 사격 선수의 마음씨 좋은 이웃

황쑤언빙 선수의 성공에 있어서 응웬티늉 코치는 올바른 길로 이끌어주는 역할을 했다면, 한국의 박충건 코치는 빙 선수의 재능과 능력을 한 단계 위로 끌어올려준 장본인이다.

2014년부터 베트남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지만, 그와 베트남 사격팀 간의 인연은 2006년부터 시작된다. 크로아티아에서 열린 2006 세계 사격선수권 대회에서 베트남 팀을 만난 박 코치는 당시 부천시 사격팀의 코치로 재직 중이었다. 그는 베트남 선수들을 보며 말로 표현은 할 수 없는 특별한 감정을 느꼈다고 전했다.

박충건 코치는 “베트남 선수들을 처음 봤을 때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터졌다. 그들은 매우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디테일이 부족하여 세계무대의 먹잇감이 되고 있었다. 그래서 베트남 팀과 이와 같은 관계를 맺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충건 코치는 그때부터 한국과 베트남 사격 연맹 간의 협력과 교류를 위해 힘써 왔으며 베트남 선수들을 지원하며 마음씨 좋은 이웃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이와 같은 그의 노력에 감동을 받은 응웬티늉 코치는 2014년 박충건 코치를 훈련 전문가로 베트남에 초청하게 되었고, 박충건 코치는 기쁜 마음으로 베트남에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박충건 코치는 훈련 전문가의 역할 뿐만 아니라, 베트남 사격 팀의 소식을 전 세계로 알리는 홍보 역할을 하기도 했다. MBC와 KBS 방송국에서 베트남 선수들이 거둔 성과를 홍보하며 전 세계에 알려졌다. 황쑤언빙 선수가 이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직후에도 그는 많은 언론사들로부터 둘러싸여 인터뷰를 했다.

팀원들에게는 한 없이 자상한 박충건 코치는 매우 겸손한 사람이다. 기자들이 계속해서 찾아와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그는 “아니요, 저는 한 게 많지 않습니다. 황쑤언빙 선수가 오랜 연습 끝에 너무나도 잘해주었고, 그는 밝고 즐거운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선수입니다. 저는 제가 맡고 있는 베트남 국가대표 팀뿐만 아니라, 베트남 사람들을 매우 사랑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많은 올림픽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라고 밝혔다.

[베트남통신사_린(K. Linh)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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