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간 한국에서, 그리고 얼마 되지 않은 호치민에서 진료를 하며 자녀를 가진 부모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호소가 바로 이것이다.
인류가 발생한 이래 전체적인 식량난이 해소된 지는 그리 길지 않다. 사냥에 실패하면 굶기 다반사였던 인간이 먹을 기회가 있을 때 먹어두지 않으면 도태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6.25전쟁 후에 황폐화된 대한민국에서 제대로 된 한 끼 식사를 먹는 것은 극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사치였다. 그 시기를 겪은 세대들이 느끼는 음식의 소중함은 본인들의 끼니를 줄여가며 자녀들을 양육하는 고통을 감내하게 한다. 오랫동안 인류에게 축적된 음식의 고마움과 함께 잘 먹는 자식에 대한 보람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전후 1세대 밑에서 자란 2, 3세대 부모들은 아이가 음식을 잘 먹지 않으면 마치 커다란 잘못을 저지르는 것 마냥 죄책감에 시달린다. ‘한 숟가락만 더!, 한 입만 더!’를 외치며 자녀와 씨름하느라 바쁘다.
그러면 도대체 우리 아이는 왜 밥을 잘 먹지 않아 부모의 속을 썩이는가?
그 이유를 발달 심리학에서 찾을 수 있다. 모든 동물의 새끼는 부모의 관심이 없으면 생존할 수 없는데, 이는 사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처음 유아기 자녀를 키워본 부모들은 아이가 자지러지게 울 때마다 이유를 알 수 없어 식은땀을 줄줄 흘리게 된다. 아이가 배고파서 우는건지, 졸려서 우는건지, 기저귀가 불편한 건지, 어디가 아픈 건지 초보 부모들은 모른다. 물론 큰 질환이 생겨 그런 경우도 있다. 하지만, 배에 가스가 차서 방귀 한번 대차게 뀐 후에 아이가 안정되는 경우도 흔하다.
수유 하기 수월했든 아니든, 아이가 자라면서 이유기에 접어들면 본격적으로 음식과의 전쟁이 시작된다. 수월하게 지나가는 경우도 있지만 액체로 된 음식만 섭취하던 아이가 약간의 고체 음식에 거부감을 나타내는 경우도 종종 나타난다. 모유나 분유와는 다른 익숙하지 못한 맛에 거부감을 느끼는 아이도 있다.
이유기를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식사를 시작한 후에 부모들은 혹시라도 생길 영양 불균형에 조마조마하게 된다. 안타깝지만 생각보다 ‘잔인한’ 우리 아이들은 이 점을 노린다. 부모의 조그만 관심에도 만족하는 아이들에게 밥을 안 먹었을 때 오는 숟가락 비행기 만큼의 부모 관심은 마약과도 같다. 무관심인 양육자보다는 부정적인 관심일 지라도 폭력을 행사하는 양육자를 선택할 정도로 아이들에게 관심은 절대적이다. 이처럼 잔인한 아이들을 이해해주자.
자, 그럼 이제 이 문제를 같이 해결해보자.
해답은 간단하다. 굶기는 것이다.
‘너 그만 먹어, 다음부터 굶어!’란 얘기가 아니다.
숫자를 읽을 수 있는 아이에게는 전자 시계를 주고 ‘여기 1이라는 숫자가 5가 되면 먹을 것을 다 치우겠다’고 말한다. 숫자를 아직 배우지 않은 아이에게는 바늘 시계를 주고 ‘이 긴 바늘이 여기까지 오면 먹을 거를 치울거야’라고 얘기해 주자.
물론 그렇게 해도 어떤 아이들은 그 시간까지 먹지 않는다. 그렇다면 바로 음식을 치워보자. 조금 더 시간을 달라는 아이에게는 10분 정도 더 주어도 무방하다. 치워도 끄떡없다면 이제 용감해질 때다.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용감해져야 할 이유는 세가지다.
첫째, 굶는다고 아이가 배고픈 것 말고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내가 밥을 안 먹었을 때 부모들이 얼마나 큰 관심을 가지는 지 아이들은 경험적으로 이미 알고 있다. 그 달콤한 마약을 끊는 것은 아이들에게 매우 어렵다. 만약 아이가 정해진 시간에 음식을 먹었을 때는 ‘시간에 맞춰 먹어줘서 고마워’ 정도의 말이 좋다. 양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둘째, 음식물의 취사 선택은 아이가 태어나서 배우는 첫 번째 ‘자기주도’ 방법이기 때문이다. 많은 부모들이 본인 자녀가 자기 주도적이고 적극적인 성인으로 성장하기를 바랄 것이다. 우리가 태어나서 자기 주도적으로 행하는 첫 번째 연습이 ‘식사’다. 가정에서 부모가 차려 놓은 밥상 안에 어떤 음식을 얼마만큼 먹을지 부터 외부에서 어떤 메뉴를 선택해 얼마만큼 먹을지까지, 본인의 선택과 판단에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배워나가는 훈련인 것이다. 이 과정을 방해하지 말자.
셋째, 장기적으로 식이장애와 발달장애를 가져올 수 있다.
위는 ‘제 2의 뇌’라고 할 만큼 스트레스에 민감한 기관이다. 기본적으로도 민감한 위에 지속적으로 주어지는 ‘한 입만 더!’, ‘한 숟가락만 더!’ 등의 요구는 음식과 스트레스와의 관계를 더욱 긴밀하게 만들어, 성인이 된 후에 가볍게는 ‘과민성 장 증후군’ 및 심하게는 ‘거식증, 폭식증’ 등의 질환을 유발하게 된다. 이미 겪어본 성인들이 주지하듯 상기 질환들은 잘 치료되지 않고, 치료가 된 후에도 스트레스 상태에서 쉽게 재발해 삶의 질에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현대를 살아가는 젊은 부모들은 위와 같은 문제를 한 두 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쉽게 용기 내지 못하는 이유는 혹시라도 생길 수 있는 ‘영양 결핍’ 및 ‘성장 장애’일 것이다.
먼저 ‘영양 결핍’에 대한 부분은 전문가와 상의해 충분히 대처해 나갈 수 있으며, ‘성장 장애’의 경우는 안 먹는 아이보다 지속적으로 스트레스에 노출 된 아이들이 훨씬 문제가 크다는 것이다. 항간에 ‘대치동 아이들은 다 고만고만해요’란 말이 괜히 나오지 않았다.
이제 정리해보자.
첫째, 집에서 식사할 경우
1. 식사 시간을 정하자.
2. 자유롭게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을 원하는 만큼 먹자.
3. 아이를 주제로 하는 대화는 피하자.
4. 식사 시간이 끝난 후 식탁을 정리하자.
5. 5분, 10분의 추가 시간은 아이가 원하는 경우에만 배려해주자.
6. 웃는 얼굴로 시작해 웃는 얼굴로 끝내자.(부모들에게 해당)
둘째, 외부에서 식사할 경우
1. 메뉴는 각자 정하자. 메뉴에 대한 사전 정보(‘이 음식은 너한테 너무 매울 것 같아.’, ‘이 음식은 맛이 없을 것 같아’ 등)는 주지말고 아이의 선택을 존중해주자.
2. 식사 시간을 정하자.
3~6은 위와 같다.
조금이라고 걱정하는 표정을 지으면 아이들은 놓치지 않으므로, 끝까지 대범한 표정을 유지하자. 간혹 아이가 스스로 전보다 나아졌다 싶으면 가볍게 미소 지으며 ‘이젠 혼자서도 잘하네’ 정도로만 칭찬해 주도록 한다.
이렇게 해도 문제점은 발생한다.
집에서 식사할 경우, 자기가 맘에 드는 반찬이 없을 수도 있다. 이럴 때는 과감하게 사과하도록 하자. ‘미안한데, 오늘 저녁은 여기 있는 반찬만 먹을거야’라고. 미안한 표정은 덤이다. 나머지는 무시해야 한다. 물론, 아이가 좋아하는 반찬을 한 가지 정도 추가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
밖에서 식사할 경우, 한입 먹고 맛없다고, 혹은 맵다고 그만두는 경우가 생긴다. 이제 부모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할 때이다. 부모는 아이들이 시행착오를 겪지 못하도록 사전에 원천봉쇄하는 존재가 아니고, 시행착오를 겪고 새로운 것을 스스로 익히도록 돕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새로 음식을 주문하는 것은 안되고, 배고프면 엄마(혹은 아빠) 것을 조금 나눠줄 수는 있는데 어때?’, 혹은 ‘네가 주문한 것은 엄마(혹은 아빠)는 좋아하는데 혹시 바꿔줄까?’ 정도가 좋다. 간혹 이렇게 해도 어렵다고 하소연하는 부모들이 있는데, 아이가 스스로 음식을 조절할 수 있으려면 어느 정도 대뇌피질이 성숙한 사춘기 이후에나 가능한 일이다. 멀리, 또 길게 보아야 한다.
우리가 부모로서 자녀를 양육하는 동안, ‘굉장히 훌륭하게 잘 큰 11살 아이’ 혹은 ‘자기 조절 능력이 뛰어난 9살 아이’가 목표는 아닐 것이다. 위에 언급했듯이 밥 먹는 것에 집중하다 보면 잃는 것이 크다. 어쩌면 과영양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자녀들이 소식을 한다는 것은, 소아비만 환자들이 겪는 각종 문제에서 조금은 더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그 밖에 성장하면서 겪는 영양 문제 및 대사에 관련된 문제들은 전문 의료인의 도움을 받으면 힘들지 않게 헤쳐나갈 수 있는 부분이다.
이제 이 글을 보신 부모님들은 다음 식사부터 숟가락을 전적으로 자녀에게 맡기고 완벽한 만찬이 아닌, 조금은 부족하고 조금은 어설픈, 하지만 평화로운 만찬을 즐기시기 바란다.
[곽남욱 경희한의원 원장 / 대한한의학회 정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