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의 발레리나 응웬투후에
베트남의 발레리나 응웬투후에
  • 베한타임즈
  • 승인 2020.06.05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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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웬투후에(Nguyễn Thu Huệ)는 베트남 무용아카데미를 졸업한 뒤 2012년 베트남 국립오페라발레단(VNOB)에 합류했다. 응웬투후에는 전국 문화예술학교 재능학생 대회에서 처음 수상한 뒤, 쇼피니아나(Chopiniana), 지젤(Giselle), 호두까기인형 등의 작품에서 단독 공연을 통해 경력을 쌓아나갔다. 그녀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인 백조의 호수에서 백조와 흑조를 동시에 표현해내 발레리나로서 이름을 알렸다.

베트남 국립오페라발레단은 35년간 베트남에서 공연되지 않던 백조의 호수를 새롭게 재구성해 공연을 재개했다. 응웬투후에는 예술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2020년 포브스 베트남 매거진이 선정한 ‘30대 미만 30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베트남뉴스는 응웬투후에와 함께 그녀의 발레에 대한 애정을 살펴볼 수 있는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Q. 응웬투후에라는 본인의 이름이 포브스 베트남 매거진이 선정한 ‘30대 미만 30에 기록됐다. 어떤 기분인가?

다양한 분야의 저명한 인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순위에 이름을 올리게 되어 매우 기쁘고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발레에 대한 열정을 다시 한 번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앞으로 베트남 사람들이 예술에 더욱 흥미를 갖게 되고, 젊은 세대에서 더 많은 예술가들이 탄생했으면 좋겠다.

Q. 응웬투후에는 백조의 호수에서 백조와 흑조를 동시에 열연한 첫 베트남 발레리나다. 이 두 가지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려면 재능, 체력, 노력 등이 필요했을 것 같다. 어린 나이에 이런 큰 역할을 맡게 된 계기가 있는지?

백조의 호수 공연은 나 자신에게도 매우 큰 도전이었다. 백조와 흑조 역할은 삶의 두 단면을 극적으로 보여주는데, 한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선과 악을 대변한다. 선한 역할은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공연해봤지만 흑조와 같은 악역은 처음이었다. 완벽한 공연을 위해 갈등과 어려움 등의 복잡한 감정들을 거쳐야 했다.

공연을 위해 무대에 올랐을 때 내가 연기하는 주인공과 나 자신이 하나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지 관객을 위한 연기라고 생각한다면 아직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나는 관객이 알아챌 수 없을 정도의 미묘한 선과 악의 갈등을 연기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단순히 타인의 감정을 따라하고 연기하는 것이 아닌, 내 영혼 안에서 여러 감정들을 내면화하기 위해 수많은 밤을 지새웠다. 끊임없는 배움과 연습의 과정이었다.

나는 결국 그 두 가지 역할을 해냈고 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발레리나로서 내 커리어에 중요한 분기점이 됐다.

Q. 백조의 호수에서 큰 성공을 거둔 뒤 다른 역할을 맡는데 부담이 느껴지지는 않는가?

그렇지 않다. 백조의 호수 공연에서 성공을 거둔 뒤 다양한 역할을 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내 안에는 다양한 감정이 존재한다. 새로운 역할을 통해 내가 일상생활에서 표현할 수 없는 내면의 감정들을 표출할 수 있게 될 것이고, 생각만으로도 희열이 느껴진다.

Q. 발레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나는 탄화성 중부지역에 있는 깜뚜이(Cẩm Thủy)라는 산악지역에서 자랐다. 부모님은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었다.

내가 살던 마을의 아이들은 대부분 학교에서 공부하며 시간을 보냈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구직이나 결혼을 위해 살던 고향으로 돌아왔다. 대부분이 그런 삶을 살았지만 나는 달랐다. 무언가 더 크고 다채로운 바깥세상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또한 나는 어릴 때부터 노래와 춤을 좋아했다. 사람들 앞에서 공연하는 걸 즐겼다.

어느 날 베트남 무용아카데미에서 내가 살던 지역 학생을 선발한다는 소식을 들었고, 부모님께 허락을 구했다. 나는 당시 12살이었는데 부모님은 내가 하노이에 살면서 공부하기에는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허락해주지 않았다. 당시 나는 단식투쟁을 하겠다고 큰소리까지 쳤다. 그 당시 어렸던 나는 무용이나 발레가 무엇인지도 몰랐을 텐데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게 내 운명이었던 것 같다.

Q. 그 당시 앞으로 겪게 될 어려움이나 난관들을 예상하지 못했을 것 같은데?

그렇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는 마음을 바꾸기에 너무 늦어버린 상태였다. 체면을 위해서라도 발레를 그만둘 수 없었다. 힘들다고 어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심지어 부모님에게도 당시 어려움과 부상 등에 대해 알리지 않았다. 또한 어느 누구에게도 우는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 단지 즐거움, 행복, 무대에서의 성공만을 보여주고 싶었다.

발레리나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수차례 낙담했지만 그 과정 가운데서 선생님, 선배, 국립단원 교수님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Q. 발레리나는 성공을 거두기 위해 무수히 노력해야 하고 큰 희생이 필요한 직업이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베트남 국립오페라발레단에 합류했을 때 건강이 허락하는 한 끝까지 공연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예술에 헌신하기 위해 개인의 행복을 희생한 수많은 예술가들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나는 커리어와 행복 사이에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나의 선택에 만족한다.

Q. 베트남 발레의 해외 진출이나 저명한 전 세계 시상식에 도전할 계획이 있나?

물론 있다. 베트남의 예술 발전을 위해 더욱 기여하고 싶고, 베트남 사람들이 예술을 더 가깝게 느끼게 되길 바란다. 베트남 발레가 국제무대에서 더욱 발전하고 인정받게 되길 희망한다.

[베트남뉴스 TTX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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